ⓒ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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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중국 정부가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 대해 '심각한 보안 문제'를 이유로 자국 시장 퇴출을 시사했다. 미국의 계속된 반도체 제재에 맞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즉각 "근거 없는 제재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다시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패권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국가의 대중국 수출 제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 측이 미국 요구에 응하지 말 것을 기대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질 경우 한국 반도체가 그 공백을 메워서는 안 된다는 뜻을 한국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중 모두 한국 반도체에 '우리 편에 서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신(新)냉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이 산업의 핵심이라 불리는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자, 미국이 겹겹이 견제에 나섰다. 메모리 1위인 한국과 파운드리 1위 대만 그리고 일본, 유럽까지 반도체 전쟁에 뛰어들면서 수 싸움은 더 치열해졌다.

글로벌 설계-제조-장비 업체들이 서로 협력하며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급사슬(supply chain)'의 판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 공급사슬에 맞춰져 있던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한국 업체들은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반도체 핵심기술 보유국이자 패권국인 미국의 견제에 동참할 수밖에 없지만, 주요 생산기지인 중국을 버릴 수는 없다. 다른 경쟁자들도 따돌려야 한다. 긴박한 상황 속 대응방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반도체 패권전쟁 1년 넘자…"中업체 타격 현실로"

반도체 패권전쟁은 지난해 3월 미국이 중국 반도체 제재를 위해 '칩4(Chip4) 동맹'을 결성하면서 시작했다.

총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웠던 과거와 달리 첨단산업을 통해 우위를 점하는 것이 목표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을 따돌리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직접적인 선단공정(디램 18nm, 낸드 128단) 제조용 장비의 중국 수출도 제한했다. 제3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 기술이 10% 이상 사용된 경우 수출을 금지하는 '해외직접생산규칙(FDPR)'을 적용했다.

여기에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투자 인센티브(보조금)를 받는 경우, 수령일로부터 10년간 중국 등 해외 우려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5%(범용 반도체는 10%) 이상 확장할 수 없게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가드레일을 지켜야 한다.

그야말로 중국의 반도체 제조 숨통을 막은 셈이다. 사실상 미국 기술이나 장비 없이 반도체 제조가 가능한 국가는 거의 없다.

실제 대만 TSMC는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자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의 매출도 급감했다. 1분기 매출이 14억6000만 달러(약 1조9300억원)로, 1년 전보다 20.6% 줄었다. SMIC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다. 지난해에는 7나노미터 반도체 공정 개발에도 성공했다.

또 중국 스마트폰 업체 오포는 아예 반도체 설계 자회사의 문을 닫기로 했다. 오포는 자사 기기에 사용할 반도체를 설계하고자 2019년 '쩌쿠'를 설립한 바 있다.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역시 반도체 생산장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가 이어지면서 중국도 반격에 나섰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21일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핵심 인프라 운영자들에게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중국이 외국 반도체 회사에 대해 안보 심사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만 자국 반도체 회사 190곳에 121억 위안(약 2조27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반도체 자립'을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장비 수출 제재에도 중국의 반도체 투자 의지가 위축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중국 정부는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비 반입의 제한을 받지 않는 레거시 공정의 우선적 투자를 통한 캐파(Capa)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회장과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회장과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진퇴양난'에 빠진 韓 반도체…대응 전략 '고심'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지만, 한국도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국의 제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생산기지가 있는 중국과 단절할 수도 없어서다.

미국은 한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다. 삼성전자의 경우,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건설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와의 경쟁 때문에 미국 공장 설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한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반도체법 인센티브 관련된 지원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중국 투자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국내 반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며 최대 소비 시장이자 우리 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거점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 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을, 충칭엔 패키징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만든다. 중국 시장을 접게 되면 이 공장들도 장기적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일본과 유럽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밝힌 대일 투자액이 2조엔(약 19조2600억원)을 넘었다. 영국 정부도 2025년까지 3300억원을 반도체 연구개발 등에 투자한다.

한국도 지난 3월에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추격이 만만찮다. 이미 낸드 플래시 강자인 일본 기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은 합병을 통해 덩치 키우기를 추진 중이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미국이 기본적으로 반도체 제조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으니 척을 지면 생산 자체가 어렵다"며 "적절한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수요자이니 시장논리에 의해서 요구사항을 최대한 맞춰야 한다"며 "공급과 수요 간의 갈등 상황에서 양면전략을 잘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생산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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